2010년 4월 9일 금요일

1차 유럽 여행 - 런던(5)

2001년 5월 26일 토요일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여전히 발이 아프다. 파스를 붙이고 주무르고 해도 소용이 없다. 다시 파스를 붙이고 신발 속에 양말을 깔았다.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왠지 쉽지 않을 것 같다.


에든버러(Edinburgh)를 다녀 온 사람이 무척 좋았다고 얘기를 한다. 나도 저렇게 말할 수 있었는데... 원통한 생각이 자꾸 든다. 돈 날린 것, 좋은 구경 못한 것들이 생각나며 한숨이 나왔다. 꺼이꺼이. 다음에 영국 오면 꼭 가 봐야지.


솔즈베리(Salisbury)를 가야해서 또 Victoria Coach Station으로 갔다. 거가서 환전을 했는데 $10을 바꾸는데 1.95파운드를 handling charge로 지불하고, 4.69파운드를 받았다. 망했다. Victoria역 근처에선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네.


이미 버스를 놓쳐 본 경험이 있어 긴장이 되었다. 차량번호가 적혀 있어 그걸 확인 했으므로 안심이 되긴 했다. 10분도 안 남았는데 차에 태우지 않아 긴장했는데, 조금 지나서 승차를 했다. 휴~ 성공이다.


어제 밤에 많이 잤는데도 차를 타니 졸음이 쏟아졌다. 솔즈베리(Salisbury)를 가는 동안 다른 곳에도 들르는데 아무리 봐도 늦게 도착할 것 같았다. 스톤헨지(Stone Henge) 관광이 1시간 40분쯤 걸리고 정시에 출발하는 걸로 아는데, 잘못하면 놓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길한 생각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 1시간 10분 쯤 늦은 3:10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버스가 5:00이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셈이다. 짧은 영어로 travel office에 들어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혹시 모를 관광 가능성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고, 버스회사에 환불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무지하게 버벅거리며 단어들만 나열하는데도 짜증내지 않고 들어주고, 못 알아들은 것은 내게 다시 물어서라도 제대로 알아듣고 질문에 답해 주었다. 고마운 사람들. 인사동에서 우리네 물건을 조금 사 왔더라면 주고 싶었다. 상배형에게서 여행 떠나기 전에 선물을 조금 사가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잊어버리고 그냥 온 게 후회스럽다.


솔즈베리(Salisbury)는 교통이 좋지 않아 하루에 다녀오기 쉽지 않다. 아니면 토요일 첫차를 타고 가서 막차를 타고 오든가 기차 편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솔즈베리(Salisbury) 성당을 다녀올까 하다가 그나마도 거리가 좀 되어 혹시 버스를 놓칠까봐 포기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마침 솔즈베리(Salisbury) Art centre를 발견하고 혹시 볼거리가 있나 해서 가 보았더니 그 앞 잔디에서 무료 공연을 하고 있었다. 거의 무언극 수준으로 대사가 거의 없이 행동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있었다. 끝부분만 보았는데, 한 사람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려는데 갖가지 이유로 식사를 못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많이 재미있지는 않지만 그냥 생각을 비우고 보면 재미있다. 열심히 연기하는 사람들이나 진지하게 보고 함께 즐거워하는 관객들 모두 좋았다. 작게 하는 무료 공연이었지만 걸어다니는 탁자, 움직이는 케이크, 터지는 랍스터 등 소도구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스톤헨지(Stone Henge)는 못 갔지만, 괜찮은 구경을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버스 겉모양이 달라 아닌 줄 알고 헤매다가 차량번호를 보고야 알았다. 까딱 잘못 했으면 또 놓칠 뻔 했다. 휴~. 가고 오는 길은 좋았다. 온통 녹색 투성이였다. 말, 소, 돼지를 방목하기도 했다. 도로 옆으로도 나무가 늘어서 있고, 끝없이 펼쳐진 건 아니지만, 꽤 넓게 풀들이 깔려 있었다. 우리네처럼 산들이 많지 않고(내가 본 곳은) 얕은 언덕들만 있었다. 근데 일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아 무슨 용도의 땅인지 무척 궁금하다.


영국의 신호등 밑엔 버튼이 있다. 누르면 적절한 때에 보행자 신호를 켜 주는 것이다. 여행객들은 이것을 잘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 본토인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쓴다. 바른생활 사나이로 통하던 나도 신호를 수 없이 무시하고 다녔다. 할 말 없다. 찔리긴 하는데, 상황 봐서 그냥 건넌 것이다. 길을 건널 땐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우리네와 달리 이네들은 차가 좌측통행을 하므로 길을 건너며 왼쪽을 보면 달아나는 차 꽁무니만 보게 된다. 의외로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방통행이 많아 어쩔 땐 우리네처럼 왼쪽을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여간 조심하자. 잘못하면 타향에서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 너무 성급한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자 하는 욕심에 발도 고장 나고, 일정을 빡빡하게 세워 조금만 틀어져도 볼 것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했다. 사진만 열심히 찍어대고 많은 곳을 다녀왔다고 자랑하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여유 있게 즐기다 가자.


내가 하는 일은 늘 스릴 만점이다. 솔즈베리(Salisbury)에서는 예정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다. 느긋하게 숙소로 돌아가 짐을 들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주머니는 내가 불안한지 계속 재촉을 하셨다. 내가 벌써 2번의 실수를 저질렀으니 그러실 만도 하지. Lewisam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티켓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니! Chech-In이 9시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출발이 10시니 설마 떠나기야 하겠냐마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Check-In이 정확히 뭐 하는 건지를 모르니 더 불안했다. 이때부터 목숨을 건 질주가 시작되었다. 또다시 버스를 놓쳐 쪽팔림을 당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뛰면서 기도했다. 제발 또다시 놓치지 않게 해 달라고. 오늘 밤에 꼭 가야 합니다. 결국 Lewisam역에서 Victoria Coach Station까지 30분만에 도착했다. 19번 gate에 가 보았는데 버스도 안 보이고 Check-In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짐이나 붙이려고 돌아다니는데 내가 봐 둔 곳은 left luggage였다. 떠나면서 짐 맡겨두고 가는 곳. 헉. 찾으러 가던 중 Continental Check-In이란 표시를 봤다. 아하 저기였구나. 잽싸게 달려 갔더니 Check-In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제야 줄을 서고도 불안했다. 10시까지 안 끝날 것 같았다. 이 줄이 맞을까란 불안함도 있었다. 앞 사람에게 당신도 같은 차냐고 물어볼까 고민하는데 앞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어떤 한국인이 시간 내에 Check-In이 안 끝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끝나야 출발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휴 또 안심. 그 2명의 한국 여자와 같은 버스를 탔다. 처음엔 혼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누군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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