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1차 유럽 여행 - 런던(3)

2001년 5월 24일 목요일

발이 여전히 편치 않아 여유 있게 움직이자 생각했다. 우선 Comden market엘 가기로 했다. Comden town역에 내려 물어 갔는데 좀 실망이었다. 주로 옷만 있고 그나마도 내 기준으론 싸지도 않았다. 실망하여 가려다가 시장이 조그만 운하 옆으로 죽 늘어섰다고 읽은 기억이 나서 좀더 걸어갔다. 그랬더니 조그만 개천이 나왔고 조그만 운하도 보였다. 그 근처에 있는 시장이 벼룩시장이었다. 옷은 물론 장신구들, 직접 만든 초들, 그림들, 토산품 등 기대했던 시장의 모습이었다. 물건 보는 눈과 적정 가격을 모르기에 싼 지는 모르지만 볼거리는 되었다. 한 쪽엔 먹을 것을 파는 곳도 있으니 구경하다 배고프면 골라먹는 재미도 경험할 것이다.



윈저 성엘 가려고 빅토리아역을 갔다. 그 근처에서 Green Line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윈저 성에 도착한다. 성은 멋졌다. 이런 성에서 살았던 왕들이 부러웠다. 성 가운데 언덕에 또 성이 있고 그 아래로 빙 둘러 정원이 있었다. 성의 북쪽 테라스에서 본 전망도 무척 좋았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라고 하신 명령을 따른다면 이렇게 멋지게 가꿀 수 있는데, 자연이 주는 것에 노예가 되어 관리하지 못하고 마구 사용만 함으로 얼마나 많이 망가뜨렸는가?








성 내부의 일부를 구경하면서 이 많은 방들이 무엇 때문에 필요했을까란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사치스럽게 자기 과시용으로 만든 것을 우린 무엇 때문에 비싼 돈 내며 구경하는가란 의문이 생겼다.


버킹검 궁전에서 위병 교대식을 못 보았는데, 규모는 훨씬 작지만, 윈저 성에서 구경을 하게 되었다. 특유의 커다란 검정 털모자를 머리에 쓴 위병들이 뭐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멋지게 교대식을 하고 있었다. 버킹검 궁전 앞에서의 위병 교대식은 훨씬 멋질 텐데. 히히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구경할 수 있어서. 어쨌든 성은 잘 지었다. 성당도 잘 지어져 있었고.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 곳에 교회가 있어 그 옆 잔디밭에서 요기를 하고(빵에 잼 발라 먹음) 예배당에 들어가 잠시 기도를 했다. 아픈 발을 위해서, 반 아이들의 신앙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예배당의 역할만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작은 예배당이 좋다. 큰 성당들은 짜증난다. 무덤만 잔뜩 있고.


런던에 돌아와선 과학박물관에 무료 입장을 했다. 과학에 관심이 많거나, 과학과 관련이 있지 않다면 가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박물관 지도를 보고 관심 있는 곳만 갔는데도 흥미있게 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직접 체험해 보는 코너는 역시 재미있었다.




무리를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도 꽤 바쁘게 돌아다녔다. 여전히 발이 아프다. Hyde park에서 요기를 하고 호수 곁에 앉았는데 저편에서 클래식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만 멀쩡했다면 달려갔을 텐데. 하지만, 호수를 바라보며 은은히 들려오는 기타 연주를 듣는 맛도 끝내 주었다.


이제 에든버러행 버스를 타려고 Victoria coach station으로 갔다. 표에 적히긴 10시였는데, 전광판엔 10:30으로 표시 되었다. 다른 버스가 지연되었다고 표시되었길래 내 차도 지연일 줄 알았다. 몇 번 확인을 해도 그 시간이었다. 10시가 좀 넘어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는데, 어라~ 남들 표랑 내 것이 다른 것이다. 설마 했는데, 난 다른 버스 앞에서 괜히 기다린 거란다. 이럴 수가. 난 에든버러 가야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안 되는 영어로 떠들어 보았지만 안 된단다. 새로 표를 끊어 타기엔 너무 늦었고, 현금도 없고, 환불도 안 된다 하고, 좀더 늦으면 또 택시 탈 판이라 귀가하기로 했다. 일이 꼬이자 큰 일이다란 생각이 들고, 돈 날린 생각이 들고(왕복 모두 밤차이므로 숙박비를 절약했는데 그것도 추가 지불해야 한다),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물어봤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물론 별로 이상하단 생각을 안 한 게 문제지. 타향 와서 이 무슨 낭패인가? 허탈함을 가득 안고 숙소로 돌아 왔다. 내 잘못인데도 한없이 서럽다.

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1차 유럽 여행 - 런던(2)

2001년 5월 23일 수요일

7:30경에 눈을 떴다. 생각보단 힘들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아욱국 비슷한 국과 오이김치, 나박김치(?) 등으로 차려주신 식사를 맛나게 먹었다. 비행기에서 먹은 양식 스타일 식사와 어제 점심, 저녁에 먹은 빵이 좀 니글거렸는지, 밥을 먹고 나니 개운해졌다. 그래서, 나도 한국인인가보다.

오늘은 대영박물관부터 시작이다. 그냥 구경하기보다는 뭔가 안내책자라도 가지고 보려고 뒤졌지만, 한글판이 보이지 않았다. 서러운 마음을 접고 이집트와 앗시리아부터 보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거의 모든 조각물에 글이 쓰여 있다는 것이다. 원래 글을 남길 목적이었던 돌판은 당연하고, 신전 앞을 지키는 돌상이나 기타 그림을 조각한 곳에도 뭔가를 열심히 기록해 놓았다. 괜시리 궁금해지며 고고학자가 되어 해석해 보고픈 욕구가 꿈틀거렸다.


전시물들을 보면서 옛사람들의 기술에 감탄하게 된다. 조그만 인장반지에 새겨 놓은 그림들. 그 섬세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그냥 단순한 그릇도 밋밋하게 두지 않고 온갖 그림을 화려하게 각 나라마다 그려낸 솜씨도 놀랍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게 하신 결과,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냈다.

한 곳에서 여러 나라의 물품을 돌아볼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원래 나라에 있지 않고 이곳에 모인 걸 보니 좀 안타까웠다. 수많은 이집트의 전시물들이 그네 나라에 있지 않고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 싶다.
 
영국인들이 생각만큼 신사적이진 않아 좀 실망스럽지만, 옛것을 잘 보존하는 것은 본 받을 만하다. 대부분의 관광명소가 있는 지하철 1존 내에서는 고층 건물을 찾아 볼 수 없고, 건물들마다 옛 모양을 다 유지하고 있다. 새로 짓질 않으니 당연히 길을 넓힐 수가 없고, 그래서 교통 상황이 만만치 않다. 우리네처럼 차를 끌고 나오지 않고, 예전 도로 체계가 그나마 좋아(그냥 내 생각) 그럭저럭 소통은 된다. 대영박물관 등에서 보듯이 과거 자료를 보관하고, 교육하기에도 힘쓰고 있다. 우리네 서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너도나도 때려부수고 높이 올리기 경쟁만 하며 자랑스레 내보이고 후손에게 가르칠 유산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으니.

많은 시간을 들여 대영박물관을 구경하곤 벨기에, 에든버러, 솔즈베리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 Victoria Coach Station으로 갔다. 토요일 밤에 Antwerp로(야간 버스는 브뤼셀에 안 섬) 가는 유로라인은 어렵지 않게 끊었는데, 에든버러행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유로라인에 에든버러 추가를 하려고 했는데, 유로라인만 먼저 끊고 난 다음에 얘기를 해서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로라인과 무관하게 왕복표를 끊어 달라고 했더니 계속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난 아무리 따져도 가능한데. 버스 운행 날짜와 시각을 써 가면서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별수 없이 유로라인만 끊고 물러난 후 숙박집 아주머니께 자문도 구해 본 후 다시 도전했다. 어쨌든 표는 반드시 끊어야 하니까. 이번엔 다른 사람과 얘기를 했는데 별 말없이 바로 끊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솔즈베리는 자신이 예매해 주는 게 아니니 다른 쪽에 가서 물어 보란다. 이런... 그래서 가르쳐 준 곳에 가니 그 쪽에선 원래 표를 산 곳에서 처리를 하란다. 우쒸~ 영어 좀 못 알아듣는다고 이리 괄시를 받나? 다시 가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니 또 군말없이 표를 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힘겹지만 어쨌든 원하는 표는 다 샀다. 힘겨운 시간이었다. 역시 영어가 안 되어 맨 땅에 헤딩하기는 너무 힘들다.
 
어제 너무 무리를 해서 오늘은 걷기도 힘들었다. 그냥 운동화 신고 왔더라면 좀 나았을텐데, 출발 전날 산 새 신이 아직 길이 들지 않아 무척 힘들다. 지친 몸을 이끌고 Phantom of Opera를 보려고 갔다. 자리는 제일 싼 자리였다. 1층 맨 뒤. 그래도 극장이 크지 않아 그럭저럭 보였는데, 2층 때문에 위쪽은 잘려서 보이지 않았다. 무대 장치는 무척 정신없이 바뀌었다.(좋았단 얘기) 말은 여전히 알아 듣기 힘들었지만 내용은 대충 감 잡았다. 근데 몸이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내용도 헛갈렸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시작할 때 조금 앞으로 옮겼는데도 불구하고, 졸고 말았다. 으 화나고 망신스러워라. 그래도, 런던에서 뮤지컬 보는 건 추천하고 싶다.

10시가 넘어서 끝났기에 귀가를 서둘렀다. 그 바람에 국철을 잘못 탔다. 아니, 이상한 걸 확인 안 했다가 큰 코 다친 셈이다. 전날과 같은 시각, 같은 종착역이라 St.Johns역이 표시가 안 되어 있어도 설 줄 알았다. 남들에게 물어 봤으면 되는데 혹여 지나가면 되돌아오겠다는 똥배짱으로 그냥 탔다. 근데 역을 지나 Liether Green역까지 간 것이다. 이럴 수가. 되돌아가는 기차가 있는지 물으니 이미 끊겼단다. 오로지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단다. 역을 나가 보니 사람도 안 보이고, 상점도 거의 문을 닫았다. 어떤 흑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나를 보고 무어라 약 올리듯 말하고 사라졌다. 염장을 지르다니. 상점을 닫고 들어가는 사람에게 물어 택시를 타고 Lewisam역까지 갔다. 택시비가 아깝고, 거기서부턴 길도 알고, 많이 멀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려서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 뛰기 시작한 게 11:30쯤. 서두르다 보니 이번엔 동네에서 집을 못 찾아 헤매다 간신히 들어갔다. 오늘은 무지하게 꼬인 날이다. 이유가 뭐지?

2009년 11월 5일 목요일

1차 유럽 여행 - 런던(1)

2001년 5월 22일 화요일

비행기가 런던 히드로(Heathrow) 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5:45이었다. 새벽이라지만 위도가 높아서 해는 이미 높이 떠올라 우리네 아침 8시 같았다. 내려서 남들을 따라 쭉 가다보니 입국 수속을 하는 곳에 이르렀다. 그냥 갔다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걸 알았다. 아하! 아까 비행기에서 나눠준 게 그거였구나. 뭔지 몰라서 그냥 버렸는데. 지금이라도 쓰는 수 밖에.

입국 심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뭐하러 왔느냐? 영국에는 며칠 있을 거냐? 등의 질문을 받았다.(요즘은 거의 질문을 안 하지만 그 때는 그래도 너댓 마디 물어봤다.) 이른 새벽이고, 사람도 많아서인지 별 문제 없이 금방 끝났다. 역시 남들을 따라 짐을 찾으러 갔다. 홍콩에서 갈아타면서 혹시 짐이 영국으로 안 따라오면 어쩌나 무지하게 걱정했는데, 내 짐이 눈 앞에 보이자 무척 반가웠다. 짐을 둘러 메고 화장실에 들러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름을 들고 서 있는다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나를 맞으러 나온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어찌된 일인가? 출발은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기로 했다. 가진 게 지폐뿐이라 20파운드를 1파운드 동전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냥 1파운드를 넣고 전화를 걸었다. 조금 늦게 출발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단다. 전화를 끊고 나니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는 20펜스면 걸 수 있었다. 헉! 전화 걸고 싶다고 얘기하고 환전했으면 됐는데, 아이고 아까워라. 전화 한 통화에 우리 돈 1900원이라니.


나를 포함해서 5명의 사람이 영국이네 게스트하우스로 가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차피 오늘도 관광을 해야 하므로 One Day Travel Ticket(하루 동안 버스, 지하철, 국철 모두 무료)을 끊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전 9:30전에는 7.7파운드라는 것이다. 공항은 6 Zone에 속하기 때문에 비싸다. 런던의 지하철은 우리네보다 많이 작다. 사람들이 체구가 큰데, 의외로 지하철은 작았다. 옛날에 만든 선로를 계속 사용하기 때문일까?


우리 숙소는 St. Johns역인데, 국철 구간이어서 중간에 갈아 탔다. 숙소가 위치한 곳은 조용한 동네였다. 근처에 college가 있지만, 사람도 눈에 잘 안 띄고 전원적인 곳이었다. 집들은 당연히 우리네와 많이 달랐고, 동네 길에도 인도가 다 있었다. 짐을 풀고, 아주머니에게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런던 관광을 위해 바로 출발했다.

Charing Cross역에서부터 Big Ben까지 걷기 시작했다. one day travel ticket을 끊었기 때문에 돈을 아낄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다. 유명한 관광코스 외에 그 중간중간에서 런던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힘들게 찾아(아직은 런던 지리가 익숙치 않아서) Big Ben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크긴 했지만, 뭐 오래 보고 있을 만하진 않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입장료가 6파운드나 했다.(11,000원 정도) 그래서, 슬그머니 바로 옆의 St.Margaret's church엘 들어갔다. 들어가서 뒤쪽 의자에 앉아 앞에 걸려 있는 방석을 바닥에 놓고 무릎을 꿇어 잠시 기도했다.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앞으로의 일정도 부탁했다. 아담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정면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장식도 멋졌다. 사람도 별로 없어 외국에서 잠시 기도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면 안성맞춤이다.

그래도 웨스트민스터에는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 6파운드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근데 이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동상과 무덤과 예전 영어뿐이었다. 으~ 실망. 그래도 볼 건 다 보려고 열심히 다니던 중 직원이 내게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바로 다른 사람과 얘기하기에 나한테 한 말이 아닌 줄 알고, 계속 관람을 했다. 근데 또다시 무어라 하는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내가 들어간 그곳은 따로 티켓을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으~ 이럴 수가. 그렇잖아도 후회하고 있었는데 돈을 더 내라고? 그래서 sorry를 연발하며 그냥 내뺐다. 그래도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 경비 아저씨께 사진을 찍어 달랬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말이다.(^^)

걸어서 St. James's park엘 갔다. 외국은 공원도 많고 잘 되어 있다길래 꼭 가보고 싶었다. 점심때가 되어 가는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연령도 다양해서 엄마 따라 나온 어린애들부터 백발이 성성하신 노인분들까지. 심지어 회사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보이는 젊은이들까지 다들 모여 쉬고 있었다. 공원은 넓고, 거의 잔디에, 아름드리 나무도 꽤 많고, 호수와 비둘기, 까마귀, 오리, 그 외의 잡새들(짭새가 아님)과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알 수 없는 귀여운 놈도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걸 소유한 이네들이 부럽고, 그걸 누리는 여유를 가진 이들이 부러웠다. 점심을 공원에서 간단하게 먹고 일광욕을 즐기며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또 일할 수 있다면... 우리네도 이런 곳이 있긴 하지만, 엄청나게 넓은 여기와 비교가 안 된다.

오늘 하루에 3군데의 공원을 돌았다. 그때마다 여행 중의 여유를 맛볼 수 있었다. 재충전과 정리의 시간. 그 동안은 이런 걸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늘 바쁘기만 했고, 그래서 지치고, 그래서 능률이 떨어지며, 그래서 더 바쁜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우리의 여건상 도심에 이런 공원을 세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마음에 짓는다면 누가 뭐라 하며 누가 막겠는가?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인접한 National Gallery를 갔다. 광장에 있는 무수한 비둘기 떼보다는 적지만 사람들이 꽤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많았다. 미술관에는 내가 본 적 있는 그림이 거의 없어서 그냥 시대별로 무슨 차이가 있는가 보았고, 아이들의 수업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네들은 우리와 확연히 달랐다. 아이들 수가 적었고, 밖에 나왔음에도 부산하지 않고 조용했고(물론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에만. 그들도 이동 중에는 장난친다. 그들도 사람이니), 질문할 때에는 조용히 손만 들고 선생님이 호명하면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아이들의 자세는 자유분방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아마 유교 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혼을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그렇게 힘겹게 수업을 하는데 그런 편한 자세를 갖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은 16:30부터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무료 입장을 기다리며 PDA로 여행 일지를 기록하는데 프랑스에서 온 아이들 중 몇 명이 신기해 하며 다가왔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무슨 기능이 있고,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마냥 신기해 하는 아이들과 내친 김에 사진도 한 방 찍었다.(그 애들의 E-mail 주소를 받아와서 사진을 보내 주면 좋았을텐데)

무료 입장이어서 좋기는 하지만 그 시간만으론 무엇이 있는가조차 확인할 수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무료 입장을 허용한 게 아닐까? 더우기 대부분의 전시물이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직접 조작하고, 설명을 읽고, 시청각 자료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보려면 돈 내고 아침부터 들어가서 보아야 한다. 하지만 관광객이라면 오후 4:30에 무료 입장을 하여 집중적으로 볼 곳을 정하여 그 곳만 보아도 무방하다.

그 다음으로는 햄리즈 장난감 백화점(Hamlees toys)엘 갔다. 지층과 1~5층,그리고 지하 1층. 온통 장난감 천지였다. 나처럼 아직도 동심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꼭 방문해 볼만하다. 온갖 종류의 인형과 리모콘 조작 장난감, 레고, 게임기, 미니어처(?) 등 모든 장난감이 총망라 되어 있다. 갑자기 이런 장남감을 가지고 놀 런던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게다가 지하엔 DDR도 하나 있었다. 1파운드라는 거금에 포기를 했지만, 고국이 생각났다. 한 외국인이 하고 있길래 보았더니, 이런 엽기다. 화살표가 밑에서 나오면 그걸 보고 열심히 밟고 있는 것이다. 헉~ 그래서 화살표가 위에 왔을 때 밟는 거라고 잽싸게 가르쳐 주었다. 과연 무식하면 용감하더군.

아무리 둘러봐도 슈퍼가 보이지 않았다. 쑥스러워 물어보지도 못하고 헤매다가 에든버러행 버스 표를 끊으려고 Victoria역으로 갔다. 거기 도착하니 너무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할아버지께 근처에 슈퍼마켓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슈퍼마켓을 모르시는 거다. 이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마켓만 외쳤고 무엇을 사려느냐고 물으시길래 빵이라고 했더니 그제야 감 잡으신 할아버지께서 건너편을 가리키셨다. 드디어 찾았다! 우리네 좀 큰 편의점보다 조금 큰 규모였는데 온통 먹는 것 천지다. 영국 물가가 비싸지만 그래도 우유는 쌌다. 1리터 약간 넘는 우유가 54펜스 밖에 안했다. 우유와 빵을 조금 사 들고 Victoria coach station으로 갔다.

우선 배가 너무 고팠기에 조금만 공원을 찾아 끼니를 때웠다. 영국은 북쪽이라 해가 길었다. 밤9시가 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하고, 새벽 3시경이면 벌써 동이 터 온다. 날씨는 우리의 초가을 날씨여서 낮엔 따뜻하다가 밤이면 좀 쌀쌀했다. 좀 추운데 공원에서 빵을 먹으니 소화도 좀 잘 안되고, 더 니글거렸다.
버스표를 끊으려고 갔는데, 원하는 날짜의 표가 없는 데다가 직원은 나의 짧은 영어에 짜증을 내서 그냥 철수를 했다.

Tower bridge의 야경을 보려고 런던 브릿지 역으로 갔다. 근데, 지도를 잘못 보았는지 생각보다 꽤 걸었다. 야경이 근사하긴 했지만 보았던 사진들만큼은 이니었다. 혹시 다 조작된 사진들 아닐까? 혼자 다니니 사진 찍기가 어렵다. 물론 부탁하면 혼쾌하게 응해주지만 언제 찍는단 말도 없이 그냥 찍어버리고, 어떻게 찍었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게 혼자 떠나는 여행의 안 좋은 점이다.


타워 브릿지를 떠나 귀가를 서둘렀다. 근데, 국철 타는 게 만만치 않다. 원하는 역을 전광판에서 확인하여 해당 플랫폼으로 가서 내가 타고자 하는 열차를 시각과 전광판을 확인하고 타야한다. 정확히 몇 시가 막차인지 알 수 없으나, 밤에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 런던의 지하철 및 국철엔 문을 여는 버튼이 있는 게 있다. 열차가 섰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잽싸게 문 옆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관광지만 정신없이 쏘다니기가 싫어 지도를 들고 물어가며 걸어 다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걸었다. 나의 건장한 다리도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숙소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 지하철을 타고는 버스 티켓예매를 위해 Victory역에 갈 때까지 계속 걸어 다녔으니 9시간이나 걸은 셈이다. 이런! 내 형을 닮아가기 시작하다니...

2009년 11월 3일 화요일

1차 유럽 여행 - 출발

2001년 5월 21일부터 한 달간 유럽을 다녀왔다. 1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가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결국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했기에 미흡한 준비에도 떠날 수 있었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 그 이후로 태국, 일본, 또 유럽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떠난 해외 여행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멋모르고 떠났지만 짬짬이 기록을 해 봤다.

2001년 5월 21일 월요일

가는 날까지 바빴다. 이발을 해야 했고, 환전도 해야 했고, 짐 챙기기도 마무리해야 했다. 그 바쁜 와중에 환전한다고 은행에 가면서 여권을 준비하지 않아 집에까지 뛰어갔다 다시 가는 일도 발생했다. 혹자는 내가 철저하고 빈틈이 없다지만,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지 완벽하게 사는 사람이거나 그렇게 되려는 사람은 아니다. 나도 내 좋아하는 것만 하다가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치곤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번 여행엔 PDA를 가지고 떠났다. 성경도, 영한사전도, 일정도 다 넣어서 갔다. 이 얼마나 편한가? 그런데, 어제 밤 노트북의 자료를 PDA로 옮기던 중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PDA가 맛이 가서 켜면 바로 오류를 뿌리며 꺼지는 것이다. 초기화를 시키려 해도 되지 않았다. 이런... 이게 안 되면 성경책을 가져가야 하고, 여행일지도 전부 종이에 기록해야 하고, 여행계획도 종이에 프린트해서 다녀야 하는 것이다. 암담함. A/S를 받을 수도 없는 기막힌 타이밍. 오늘 아침까지 별짓 다해 보고, 인터넷도 뒤져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절망.

포기하고 식사를 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기계조차도 고치시는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이번 여행에 저것(PDA)이 필요합니다. 고쳐 주세요.’ 그리곤 식사를 마치고 켜 봤다. 단지 그냥 켰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잘되는 것이었다. 기적이다. 하나님은 이번 여행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나에게 나를 믿으라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고 말씀하신 셈이다. 광호의 하나님 멋쟁이!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혹시 빠뜨리고 가는 건 없는가 하는 걱정만 들었다. 조금은 썰렁한 공항에 도착해서 check-in을 하면서도 별 느낌이 없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자 그제야 조금 느낌이 왔다. ‘나의 조국을 떠나는구나. 드디어 시작이구나.’ 3번째 타는 비행기인데도 여전히 두려웠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엘 갔었다. 이상기류 때문에 갑자기 밑으로 쭉 떨어지는 경험을 몇차례 했다. 제주도까지 1시간 10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그러지 않아 비행이 늘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비행이 여전히 조금은 무섭다. 역시 이번에도 놀이기구마냥 밑으로 쭈욱 떨어지는 건 없었지만 멀미를 좀 했다.
 
비행기에서 한참 제목도 모르는 영화를 보다가 창밖을 보니 흰 색의 조각전이 한창이었다. 하얀 솜을 바닥에 쭈욱 깔고 그 위에 형태를 알 수 없지만 보면 경탄할 만한 작품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저 멀리 옅은 파랑색을 배경으로 해서. 내가 보기엔 이 걸작품들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멋지게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자연을 살펴볼수록, 과학을 배워 갈수록 필연적으로 창조주를 발견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구에 꼭 필요한 구름을 만드시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예술적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셨다. 제주도만 다녀온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론 제주도 갈 때는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홍콩공항에 내렸는데 갈아 탈 영국 비행기는 5시간정도가 지나야 있다. 헉 혼자서 5시간을 어떻게... 면세점을 다 구경하고도 3시간 반 정도가 남았다. 으 뭐하지? 혼자 온 게 좀 후회스러웠다. 잠깐 눈을 붙였다 또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였다. 그리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