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3일 화요일

1차 유럽 여행 - 출발

2001년 5월 21일부터 한 달간 유럽을 다녀왔다. 1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가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결국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했기에 미흡한 준비에도 떠날 수 있었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 그 이후로 태국, 일본, 또 유럽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떠난 해외 여행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멋모르고 떠났지만 짬짬이 기록을 해 봤다.

2001년 5월 21일 월요일

가는 날까지 바빴다. 이발을 해야 했고, 환전도 해야 했고, 짐 챙기기도 마무리해야 했다. 그 바쁜 와중에 환전한다고 은행에 가면서 여권을 준비하지 않아 집에까지 뛰어갔다 다시 가는 일도 발생했다. 혹자는 내가 철저하고 빈틈이 없다지만,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지 완벽하게 사는 사람이거나 그렇게 되려는 사람은 아니다. 나도 내 좋아하는 것만 하다가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치곤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번 여행엔 PDA를 가지고 떠났다. 성경도, 영한사전도, 일정도 다 넣어서 갔다. 이 얼마나 편한가? 그런데, 어제 밤 노트북의 자료를 PDA로 옮기던 중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PDA가 맛이 가서 켜면 바로 오류를 뿌리며 꺼지는 것이다. 초기화를 시키려 해도 되지 않았다. 이런... 이게 안 되면 성경책을 가져가야 하고, 여행일지도 전부 종이에 기록해야 하고, 여행계획도 종이에 프린트해서 다녀야 하는 것이다. 암담함. A/S를 받을 수도 없는 기막힌 타이밍. 오늘 아침까지 별짓 다해 보고, 인터넷도 뒤져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절망.

포기하고 식사를 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기계조차도 고치시는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이번 여행에 저것(PDA)이 필요합니다. 고쳐 주세요.’ 그리곤 식사를 마치고 켜 봤다. 단지 그냥 켰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잘되는 것이었다. 기적이다. 하나님은 이번 여행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나에게 나를 믿으라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고 말씀하신 셈이다. 광호의 하나님 멋쟁이!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혹시 빠뜨리고 가는 건 없는가 하는 걱정만 들었다. 조금은 썰렁한 공항에 도착해서 check-in을 하면서도 별 느낌이 없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자 그제야 조금 느낌이 왔다. ‘나의 조국을 떠나는구나. 드디어 시작이구나.’ 3번째 타는 비행기인데도 여전히 두려웠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엘 갔었다. 이상기류 때문에 갑자기 밑으로 쭉 떨어지는 경험을 몇차례 했다. 제주도까지 1시간 10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그러지 않아 비행이 늘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비행이 여전히 조금은 무섭다. 역시 이번에도 놀이기구마냥 밑으로 쭈욱 떨어지는 건 없었지만 멀미를 좀 했다.
 
비행기에서 한참 제목도 모르는 영화를 보다가 창밖을 보니 흰 색의 조각전이 한창이었다. 하얀 솜을 바닥에 쭈욱 깔고 그 위에 형태를 알 수 없지만 보면 경탄할 만한 작품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저 멀리 옅은 파랑색을 배경으로 해서. 내가 보기엔 이 걸작품들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멋지게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자연을 살펴볼수록, 과학을 배워 갈수록 필연적으로 창조주를 발견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구에 꼭 필요한 구름을 만드시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예술적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셨다. 제주도만 다녀온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론 제주도 갈 때는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홍콩공항에 내렸는데 갈아 탈 영국 비행기는 5시간정도가 지나야 있다. 헉 혼자서 5시간을 어떻게... 면세점을 다 구경하고도 3시간 반 정도가 남았다. 으 뭐하지? 혼자 온 게 좀 후회스러웠다. 잠깐 눈을 붙였다 또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였다. 그리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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