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5일 목요일

1차 유럽 여행 - 런던(1)

2001년 5월 22일 화요일

비행기가 런던 히드로(Heathrow) 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5:45이었다. 새벽이라지만 위도가 높아서 해는 이미 높이 떠올라 우리네 아침 8시 같았다. 내려서 남들을 따라 쭉 가다보니 입국 수속을 하는 곳에 이르렀다. 그냥 갔다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걸 알았다. 아하! 아까 비행기에서 나눠준 게 그거였구나. 뭔지 몰라서 그냥 버렸는데. 지금이라도 쓰는 수 밖에.

입국 심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뭐하러 왔느냐? 영국에는 며칠 있을 거냐? 등의 질문을 받았다.(요즘은 거의 질문을 안 하지만 그 때는 그래도 너댓 마디 물어봤다.) 이른 새벽이고, 사람도 많아서인지 별 문제 없이 금방 끝났다. 역시 남들을 따라 짐을 찾으러 갔다. 홍콩에서 갈아타면서 혹시 짐이 영국으로 안 따라오면 어쩌나 무지하게 걱정했는데, 내 짐이 눈 앞에 보이자 무척 반가웠다. 짐을 둘러 메고 화장실에 들러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름을 들고 서 있는다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나를 맞으러 나온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어찌된 일인가? 출발은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기로 했다. 가진 게 지폐뿐이라 20파운드를 1파운드 동전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냥 1파운드를 넣고 전화를 걸었다. 조금 늦게 출발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단다. 전화를 끊고 나니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는 20펜스면 걸 수 있었다. 헉! 전화 걸고 싶다고 얘기하고 환전했으면 됐는데, 아이고 아까워라. 전화 한 통화에 우리 돈 1900원이라니.


나를 포함해서 5명의 사람이 영국이네 게스트하우스로 가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차피 오늘도 관광을 해야 하므로 One Day Travel Ticket(하루 동안 버스, 지하철, 국철 모두 무료)을 끊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전 9:30전에는 7.7파운드라는 것이다. 공항은 6 Zone에 속하기 때문에 비싸다. 런던의 지하철은 우리네보다 많이 작다. 사람들이 체구가 큰데, 의외로 지하철은 작았다. 옛날에 만든 선로를 계속 사용하기 때문일까?


우리 숙소는 St. Johns역인데, 국철 구간이어서 중간에 갈아 탔다. 숙소가 위치한 곳은 조용한 동네였다. 근처에 college가 있지만, 사람도 눈에 잘 안 띄고 전원적인 곳이었다. 집들은 당연히 우리네와 많이 달랐고, 동네 길에도 인도가 다 있었다. 짐을 풀고, 아주머니에게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런던 관광을 위해 바로 출발했다.

Charing Cross역에서부터 Big Ben까지 걷기 시작했다. one day travel ticket을 끊었기 때문에 돈을 아낄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다. 유명한 관광코스 외에 그 중간중간에서 런던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힘들게 찾아(아직은 런던 지리가 익숙치 않아서) Big Ben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크긴 했지만, 뭐 오래 보고 있을 만하진 않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입장료가 6파운드나 했다.(11,000원 정도) 그래서, 슬그머니 바로 옆의 St.Margaret's church엘 들어갔다. 들어가서 뒤쪽 의자에 앉아 앞에 걸려 있는 방석을 바닥에 놓고 무릎을 꿇어 잠시 기도했다.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앞으로의 일정도 부탁했다. 아담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정면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장식도 멋졌다. 사람도 별로 없어 외국에서 잠시 기도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면 안성맞춤이다.

그래도 웨스트민스터에는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 6파운드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근데 이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동상과 무덤과 예전 영어뿐이었다. 으~ 실망. 그래도 볼 건 다 보려고 열심히 다니던 중 직원이 내게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바로 다른 사람과 얘기하기에 나한테 한 말이 아닌 줄 알고, 계속 관람을 했다. 근데 또다시 무어라 하는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내가 들어간 그곳은 따로 티켓을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으~ 이럴 수가. 그렇잖아도 후회하고 있었는데 돈을 더 내라고? 그래서 sorry를 연발하며 그냥 내뺐다. 그래도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 경비 아저씨께 사진을 찍어 달랬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말이다.(^^)

걸어서 St. James's park엘 갔다. 외국은 공원도 많고 잘 되어 있다길래 꼭 가보고 싶었다. 점심때가 되어 가는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연령도 다양해서 엄마 따라 나온 어린애들부터 백발이 성성하신 노인분들까지. 심지어 회사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보이는 젊은이들까지 다들 모여 쉬고 있었다. 공원은 넓고, 거의 잔디에, 아름드리 나무도 꽤 많고, 호수와 비둘기, 까마귀, 오리, 그 외의 잡새들(짭새가 아님)과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알 수 없는 귀여운 놈도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걸 소유한 이네들이 부럽고, 그걸 누리는 여유를 가진 이들이 부러웠다. 점심을 공원에서 간단하게 먹고 일광욕을 즐기며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또 일할 수 있다면... 우리네도 이런 곳이 있긴 하지만, 엄청나게 넓은 여기와 비교가 안 된다.

오늘 하루에 3군데의 공원을 돌았다. 그때마다 여행 중의 여유를 맛볼 수 있었다. 재충전과 정리의 시간. 그 동안은 이런 걸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늘 바쁘기만 했고, 그래서 지치고, 그래서 능률이 떨어지며, 그래서 더 바쁜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우리의 여건상 도심에 이런 공원을 세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마음에 짓는다면 누가 뭐라 하며 누가 막겠는가?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인접한 National Gallery를 갔다. 광장에 있는 무수한 비둘기 떼보다는 적지만 사람들이 꽤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많았다. 미술관에는 내가 본 적 있는 그림이 거의 없어서 그냥 시대별로 무슨 차이가 있는가 보았고, 아이들의 수업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네들은 우리와 확연히 달랐다. 아이들 수가 적었고, 밖에 나왔음에도 부산하지 않고 조용했고(물론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에만. 그들도 이동 중에는 장난친다. 그들도 사람이니), 질문할 때에는 조용히 손만 들고 선생님이 호명하면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아이들의 자세는 자유분방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아마 유교 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혼을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그렇게 힘겹게 수업을 하는데 그런 편한 자세를 갖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은 16:30부터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무료 입장을 기다리며 PDA로 여행 일지를 기록하는데 프랑스에서 온 아이들 중 몇 명이 신기해 하며 다가왔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무슨 기능이 있고,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마냥 신기해 하는 아이들과 내친 김에 사진도 한 방 찍었다.(그 애들의 E-mail 주소를 받아와서 사진을 보내 주면 좋았을텐데)

무료 입장이어서 좋기는 하지만 그 시간만으론 무엇이 있는가조차 확인할 수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무료 입장을 허용한 게 아닐까? 더우기 대부분의 전시물이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직접 조작하고, 설명을 읽고, 시청각 자료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보려면 돈 내고 아침부터 들어가서 보아야 한다. 하지만 관광객이라면 오후 4:30에 무료 입장을 하여 집중적으로 볼 곳을 정하여 그 곳만 보아도 무방하다.

그 다음으로는 햄리즈 장난감 백화점(Hamlees toys)엘 갔다. 지층과 1~5층,그리고 지하 1층. 온통 장난감 천지였다. 나처럼 아직도 동심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꼭 방문해 볼만하다. 온갖 종류의 인형과 리모콘 조작 장난감, 레고, 게임기, 미니어처(?) 등 모든 장난감이 총망라 되어 있다. 갑자기 이런 장남감을 가지고 놀 런던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게다가 지하엔 DDR도 하나 있었다. 1파운드라는 거금에 포기를 했지만, 고국이 생각났다. 한 외국인이 하고 있길래 보았더니, 이런 엽기다. 화살표가 밑에서 나오면 그걸 보고 열심히 밟고 있는 것이다. 헉~ 그래서 화살표가 위에 왔을 때 밟는 거라고 잽싸게 가르쳐 주었다. 과연 무식하면 용감하더군.

아무리 둘러봐도 슈퍼가 보이지 않았다. 쑥스러워 물어보지도 못하고 헤매다가 에든버러행 버스 표를 끊으려고 Victoria역으로 갔다. 거기 도착하니 너무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할아버지께 근처에 슈퍼마켓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슈퍼마켓을 모르시는 거다. 이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마켓만 외쳤고 무엇을 사려느냐고 물으시길래 빵이라고 했더니 그제야 감 잡으신 할아버지께서 건너편을 가리키셨다. 드디어 찾았다! 우리네 좀 큰 편의점보다 조금 큰 규모였는데 온통 먹는 것 천지다. 영국 물가가 비싸지만 그래도 우유는 쌌다. 1리터 약간 넘는 우유가 54펜스 밖에 안했다. 우유와 빵을 조금 사 들고 Victoria coach station으로 갔다.

우선 배가 너무 고팠기에 조금만 공원을 찾아 끼니를 때웠다. 영국은 북쪽이라 해가 길었다. 밤9시가 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하고, 새벽 3시경이면 벌써 동이 터 온다. 날씨는 우리의 초가을 날씨여서 낮엔 따뜻하다가 밤이면 좀 쌀쌀했다. 좀 추운데 공원에서 빵을 먹으니 소화도 좀 잘 안되고, 더 니글거렸다.
버스표를 끊으려고 갔는데, 원하는 날짜의 표가 없는 데다가 직원은 나의 짧은 영어에 짜증을 내서 그냥 철수를 했다.

Tower bridge의 야경을 보려고 런던 브릿지 역으로 갔다. 근데, 지도를 잘못 보았는지 생각보다 꽤 걸었다. 야경이 근사하긴 했지만 보았던 사진들만큼은 이니었다. 혹시 다 조작된 사진들 아닐까? 혼자 다니니 사진 찍기가 어렵다. 물론 부탁하면 혼쾌하게 응해주지만 언제 찍는단 말도 없이 그냥 찍어버리고, 어떻게 찍었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게 혼자 떠나는 여행의 안 좋은 점이다.


타워 브릿지를 떠나 귀가를 서둘렀다. 근데, 국철 타는 게 만만치 않다. 원하는 역을 전광판에서 확인하여 해당 플랫폼으로 가서 내가 타고자 하는 열차를 시각과 전광판을 확인하고 타야한다. 정확히 몇 시가 막차인지 알 수 없으나, 밤에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 런던의 지하철 및 국철엔 문을 여는 버튼이 있는 게 있다. 열차가 섰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잽싸게 문 옆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관광지만 정신없이 쏘다니기가 싫어 지도를 들고 물어가며 걸어 다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걸었다. 나의 건장한 다리도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숙소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 지하철을 타고는 버스 티켓예매를 위해 Victory역에 갈 때까지 계속 걸어 다녔으니 9시간이나 걸은 셈이다. 이런! 내 형을 닮아가기 시작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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