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경에 눈을 떴다. 생각보단 힘들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아욱국 비슷한 국과 오이김치, 나박김치(?) 등으로 차려주신 식사를 맛나게 먹었다. 비행기에서 먹은 양식 스타일 식사와 어제 점심, 저녁에 먹은 빵이 좀 니글거렸는지, 밥을 먹고 나니 개운해졌다. 그래서, 나도 한국인인가보다.
오늘은 대영박물관부터 시작이다. 그냥 구경하기보다는 뭔가 안내책자라도 가지고 보려고 뒤졌지만, 한글판이 보이지 않았다. 서러운 마음을 접고 이집트와 앗시리아부터 보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거의 모든 조각물에 글이 쓰여 있다는 것이다. 원래 글을 남길 목적이었던 돌판은 당연하고, 신전 앞을 지키는 돌상이나 기타 그림을 조각한 곳에도 뭔가를 열심히 기록해 놓았다. 괜시리 궁금해지며 고고학자가 되어 해석해 보고픈 욕구가 꿈틀거렸다.
전시물들을 보면서 옛사람들의 기술에 감탄하게 된다. 조그만 인장반지에 새겨 놓은 그림들. 그 섬세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그냥 단순한 그릇도 밋밋하게 두지 않고 온갖 그림을 화려하게 각 나라마다 그려낸 솜씨도 놀랍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게 하신 결과,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냈다.
한 곳에서 여러 나라의 물품을 돌아볼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원래 나라에 있지 않고 이곳에 모인 걸 보니 좀 안타까웠다. 수많은 이집트의 전시물들이 그네 나라에 있지 않고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 싶다.
영국인들이 생각만큼 신사적이진 않아 좀 실망스럽지만, 옛것을 잘 보존하는 것은 본 받을 만하다. 대부분의 관광명소가 있는 지하철 1존 내에서는 고층 건물을 찾아 볼 수 없고, 건물들마다 옛 모양을 다 유지하고 있다. 새로 짓질 않으니 당연히 길을 넓힐 수가 없고, 그래서 교통 상황이 만만치 않다. 우리네처럼 차를 끌고 나오지 않고, 예전 도로 체계가 그나마 좋아(그냥 내 생각) 그럭저럭 소통은 된다. 대영박물관 등에서 보듯이 과거 자료를 보관하고, 교육하기에도 힘쓰고 있다. 우리네 서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너도나도 때려부수고 높이 올리기 경쟁만 하며 자랑스레 내보이고 후손에게 가르칠 유산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으니.
많은 시간을 들여 대영박물관을 구경하곤 벨기에, 에든버러, 솔즈베리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 Victoria Coach Station으로 갔다. 토요일 밤에 Antwerp로(야간 버스는 브뤼셀에 안 섬) 가는 유로라인은 어렵지 않게 끊었는데, 에든버러행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유로라인에 에든버러 추가를 하려고 했는데, 유로라인만 먼저 끊고 난 다음에 얘기를 해서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로라인과 무관하게 왕복표를 끊어 달라고 했더니 계속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난 아무리 따져도 가능한데. 버스 운행 날짜와 시각을 써 가면서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별수 없이 유로라인만 끊고 물러난 후 숙박집 아주머니께 자문도 구해 본 후 다시 도전했다. 어쨌든 표는 반드시 끊어야 하니까. 이번엔 다른 사람과 얘기를 했는데 별 말없이 바로 끊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솔즈베리는 자신이 예매해 주는 게 아니니 다른 쪽에 가서 물어 보란다. 이런... 그래서 가르쳐 준 곳에 가니 그 쪽에선 원래 표를 산 곳에서 처리를 하란다. 우쒸~ 영어 좀 못 알아듣는다고 이리 괄시를 받나? 다시 가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니 또 군말없이 표를 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힘겹지만 어쨌든 원하는 표는 다 샀다. 힘겨운 시간이었다. 역시 영어가 안 되어 맨 땅에 헤딩하기는 너무 힘들다.
어제 너무 무리를 해서 오늘은 걷기도 힘들었다. 그냥 운동화 신고 왔더라면 좀 나았을텐데, 출발 전날 산 새 신이 아직 길이 들지 않아 무척 힘들다. 지친 몸을 이끌고 Phantom of Opera를 보려고 갔다. 자리는 제일 싼 자리였다. 1층 맨 뒤. 그래도 극장이 크지 않아 그럭저럭 보였는데, 2층 때문에 위쪽은 잘려서 보이지 않았다. 무대 장치는 무척 정신없이 바뀌었다.(좋았단 얘기) 말은 여전히 알아 듣기 힘들었지만 내용은 대충 감 잡았다. 근데 몸이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내용도 헛갈렸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시작할 때 조금 앞으로 옮겼는데도 불구하고, 졸고 말았다. 으 화나고 망신스러워라. 그래도, 런던에서 뮤지컬 보는 건 추천하고 싶다.
10시가 넘어서 끝났기에 귀가를 서둘렀다. 그 바람에 국철을 잘못 탔다. 아니, 이상한 걸 확인 안 했다가 큰 코 다친 셈이다. 전날과 같은 시각, 같은 종착역이라 St.Johns역이 표시가 안 되어 있어도 설 줄 알았다. 남들에게 물어 봤으면 되는데 혹여 지나가면 되돌아오겠다는 똥배짱으로 그냥 탔다. 근데 역을 지나 Liether Green역까지 간 것이다. 이럴 수가. 되돌아가는 기차가 있는지 물으니 이미 끊겼단다. 오로지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단다. 역을 나가 보니 사람도 안 보이고, 상점도 거의 문을 닫았다. 어떤 흑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나를 보고 무어라 약 올리듯 말하고 사라졌다. 염장을 지르다니. 상점을 닫고 들어가는 사람에게 물어 택시를 타고 Lewisam역까지 갔다. 택시비가 아깝고, 거기서부턴 길도 알고, 많이 멀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려서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 뛰기 시작한 게 11:30쯤. 서두르다 보니 이번엔 동네에서 집을 못 찾아 헤매다 간신히 들어갔다. 오늘은 무지하게 꼬인 날이다. 이유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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